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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08 구르는 리
  2. 2016.11.23 스타트렉+지도형제 크로스오버
2017. 6. 8. 01:03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다리는 판단이 아닌 본능으로 움직였다. 오른손은 더 이상 감각이 없다. 왼손은 아예 어깨부터 움직이질 않는다. 반격하더라도 승산이 없음은 불 보듯 뻔했다. 절박한 심정과는 반대로, 리의 머리 한 구석에선 자신의 상태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있었다. 어차피 가망이 없다면, 도망칠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게 나의 긍지 아닌가?

 

비틀, 한 순간 집중이 끊어지자 움직임이 무너졌다. 한계까지 달리던 반동에 리는 그대로 모래바닥을 뒹굴었다. 입 안으로 들어온 모래를 뱉고, 팔꿈치로 바닥을 짚어 겨우 몸을 일으키는 찰나의 순간에도 리는 투지를 불태웠다. 그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느껴졌다. 가이 선생님, 저는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정말? 그게 긍지라고? 그냥 살아남기를 포기한 것 아니라?

 

시야가 아득해지며 곧 몸이 튕겨져 날아올랐다.

 

 

 

*

 

<분류 - 호카게 직인 문서>

<최상위급 기밀 유지>

 

이름 : 록 리

성별 : 남자

나이 : 17

닌자 등록번호 : 012561

기타 특이사항 : 임무 수행 중 본국 제출 예정이던 문서를 갖고 실종됨. 당국은 규정에 따라 록 리를 탈주 닌자로 판단. 록 리를 제거하고 기밀 문서를 회수한다.

 

 

 

*

 

부유하던 신체가 다시 한 번 모래바닥에 처박히자 온몸을 으스러뜨리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리는 갈비뼈 한 대가 더 나갔음을 직감했다. 쿨럭. 피가 섞인 모래를 토해낸다. 전에도 비슷한 적이 있었던가?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입술을 짓씹었다.

 

생각하자, 생각해야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무엇이 날 살게 하지?

 

문득 보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곳에 그들은 없어, 나는 만나러 가야만 해. 애써 시야를 다잡으며 리는 다리에 힘을 줬다. 다행히도 아직 다리만은 부러지지 않은 것 같다.

 

죽지 않는다. 살아남을 거예요. 그게 나의 긍지니까.

 

 

 

*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불온한 기운에 가아라는 감각을 집중했다. 거대하고 빠른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기도 하며, 더욱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착실히 간격을 좁혀가고 있었다.

 

무엇과?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가아라는 제가 찾던 사람이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왔음을 확신하고 몸을 일으켰다.

 

 

 

*

 

차라리. 지금이라도. 그냥.

자꾸만 약해지려는 정신을 붙잡는다. 목숨을 내던지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리는 그 사실을 되새겨야만 했다. 왼쪽 어깨는 탈골됐다. 왼쪽 다리도 허벅지부터 길게 찢어져 피가 흐른다. 그나마 뼈가 다친 건 아니지만, 서둘러 지혈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죽을지도 모른다.

 

맞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죠.

 

몇 년 전 치러졌던 중급 닌자 선발전을 떠올렸다. 몸의 절반이 으스러지는 고통. 그럼에도 자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신을 놓치면서까지 매달렸다. 증명하고만 싶었으니까. 자신의 길이 그르지 않음을.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증명해야했다. 그리고 그건 틀리지 않았다. 리는 그렇게 믿었다.

 

지금도 그 때와 같을까요?

 

리는 오른팔을 겨우 움직여 품 안의 두루마리가 무사한지 확인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숨을 고른다. 아직은, 안 돼.

등에 짊어진 무게가 다르다. 자신은 더 이상 그때처럼 단순할 수 없었다.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이 눈으로 스며들어 쓰라렸다. 시야가 붉어진 걸 보니 피도 섞였음을 짐작했다. 붉은 색, 모래.

급박한 와중에도 무심코 떠오르는 기억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너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어요. 그럴 수 있을까요? 네 모래도 나를 뒤쫓을까요? 내가 모든 걸 놓고, 모든 걸 걸고, 너에게 신뢰를 맡겨도 될까요?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나요?

 

한 방울, 눈에 다시 땀이 스며든다. 쓰라려서 눈물이 났다.

 

 

 

*

 

사냥감을 갖고 놀던 포식자가 맹렬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아라는 상대방이 자신의 차크라를 인식했음을 깨달았다. 다 잡은 먹이를 빼앗길까봐 분노하는 것이다. 어림없어. 가아라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피냄새에 정신을 집중했다.

 

가아라, 명령을.”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아라는 그것이 꼭 신중함 때문만은 아님을 알았다. 그의 누나는 동생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우선시해야하는 것인가? 대답은 명료하다. 나뭇잎으로부터의 요청은 두루마리의 회수. 일개 중닌의 안위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두루마리는 시체로부터도 회수할 수 있다. 가아라는 저 괴물이 이 이상 마을에 근접하기 전에 판단을 내려야 했다.


가아라는 리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환한 미소가 햇살에 지워진다.

 

차크라가 넘쳐흐른다.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되어 흐른다. 거대한 불꽃이 지면 아래에서 그 몸집을 키워나간다. 가아라는 그것이 제 분노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넘쳐흐른다. 순식간에 솟구친 모래가 하늘을 뒤덮었다.

 

*

 

산소가 부족하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몸에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이 빠져나간다. 리는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제 한계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하나둘씩 실이 끊어지는 몸은 점점 더 움직임을 흐트러뜨린다.

절박하게 뻗은 손이 무너져 내렸다. 리는 끝을 직감했다. 곧 머지않아 기력을 다한 몸이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이르게 시야가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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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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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글렌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꿈인가? 현실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뭘 해야 하지?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으나 안개에 휩싸인 듯 몽롱할 뿐이었다.

 

일어나야해. 워커가 습격해 올지도 몰라.

 

글렌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비극은 항상 가장 안심하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중히 끌어안고 있던 것들을 무참히 빼앗겨 학살당하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새도 없이 다시 하루를 더 살아남기 위해 달려야한다. 그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야말로 글렌이 처절하게 겪은 비극이었다. 그는 찰나의 여유에 취해 비극으로부터 취약해 지는 것이 두려웠다.

 

흐릿한 시야를 대신해 손을 뻗었으나 움직임을 가로막혔다. 긴장으로 몸을 굳힌 글렌은 곧 자신의 오른쪽 손목을 묶은 끈이 침대의 난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피가 통할만큼만 헐렁하게 묶인 끈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글렌은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했다. 환풍기가 돌아가는 작은 방, 굴러 떨어지지 않게끔 난간을 설치한 침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호출기. 이곳은 요크타운 병원 내의 격리실이었다.

 

글렌은 손목에 묶여있는 끈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호출기를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밖으로부터 의료진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문의 락을 해제하는 기계음을 들으며 글렌은 자신이 얼마동안 누워있었는지를 가늠하려 애썼다. 몇 시간? 아니면 며칠?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격리실엔 시계는커녕 바깥을 확인할 창문조차 없었으니까.

 

“상태는 좀 어때? 대답할 수 있겠어?”

 

한껏 찌푸린 얼굴을 한 본즈가 글렌의 안색을 살폈다. 걱정과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글렌으로부터 괜찮다는 대답을 듣고 난 후에야 안도의 빛을 드러냈다. 본즈는 트리코더를 통해 글렌이 완전히 무사함을 몇 번이나 확인한 뒤 동행한 경비원과 다른 의료진들을 돌려보냈다. 규정상 경비원 한 명은 대동해야 한다는 반발이 있었지만 본즈의 태도는 단호했다. 애초에 그는 글렌을 격리실로 보내는 것부터 탐탁치 않아했던 인물이었다. 버려진 지구에서 움직이는 시체들을 직접 봤으면서도 그랬다. 글렌은 본즈가 퉁명스런 태도로 사람들을 얼마나 상냥하게 대하는지 알고 있었다. 쓸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손목을 묶어둔 것도 필시 그의 작품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본즈는 글렌의 의식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곧장 손목에 묶인 끈부터 풀었다. 최대한 헐렁하게 묶었음에도 엷게 남은 자국을 보며 핀잔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나.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한다는 말이 자길 묶어달라는 거라니. 내가 영양실조 환자를 침대에 묶으면서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는지 전혀 모를 거다, 이 녀석아.”

 

글렌은 자국이 남은 손목을 쓰다듬으면서 헤헤 웃을 뿐이었다. 또 같은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글렌은 같은 부탁을 할 것이며, 본즈도 거절하지 못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버려진 지구에서 글렌과 민호가 구출된 뒤 요크타운에 도착한지는 몇 달이 지났지만, 글렌의 몸속에 잠복해있는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다시 말해 글렌은 언제 워커가 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죽지 않는 이상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으나, 사고의 위험은 항상 잠재하고 있으며 특히 글렌은 오랜 영양실조로 인한 체력저하 때문에 잔병치레가 잦았다.

 

지구에선 며칠을 굶어도 뛰어다닐 수 있었는데. 당장 생명을 위협하는 가시적인 존재가 사라지자 긴장이 풀려서 이런 것 같다고 글렌은 스스로의 정신력을 탓했다. 언젠가 자조하듯 내뱉었다가 본즈에게 꿀밤을 맞은 뒤로는 자제하고 있지만.

 

본즈는 글렌 형제가 요크타운에 도착한 뒤 자진해서 그들의 담당의를 맡았다. 실제로 워커를 봤으며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긴급 상황에 가장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다. 그러나 지구에서 알아낸 모든 정보들은 데이터화 작업을 마쳤으며 별도의 어려움 없이 인수인계가 가능하다. 함선의 CMO인 본즈가 엔터프라이즈의 탐사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형제를 맡겠다고 한 건 순전히 그의 성품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그는 아는 얼굴이라곤 서로뿐인 형제를 생판 모르는 행성에 내버려두는 것도, 그들이 가진 특이성으로 인해 의료계의 실험쥐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한 상냥함과 더불어 함장의 특별 지시가 더해진 것이 작금의 상황이었다.

 

글렌이 분에 넘치는 배려라며 감사의 말을 전할 때마다 본즈는 회복에나 집중하라 타박했다. 그는 글렌의 잦은 발열이 PTSD의 일종임을 알고 있었다. 동생 민호는 요크타운 도착 직후에 며칠을 죽은 듯이 잠만 잤던 것을 빼곤 별다른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형 못지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게 당연했다. 특히 이번은 정도가 심했다. 급박하게 걸려온 민호의 연락을 받고 도착했을 때 글렌은 열이 펄펄 끓는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워커로 변해 민호를 해칠까봐 방 안에서 문을 잠그곤 스스로를 가둬놨다. 응급실로 이송하는 중에도 열에 들뜬 목소리로 자신을 묶어두라고 수십 번은 반복했다.

 

글렌에게 괜찮아질 거라며 간간히 건네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민호는 울지 않았다. 본즈는 꼭 쥔 채로 덜덜 떨고 있는 손을 보고나서야 민호가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노력하고 있음을 알았다. 겨우 벗어난 지옥이었건만 형제에게는 아직도 안식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횡설수설하는 널 보면서 네 동생이 무슨 심정이었을지 알기나 해? 본즈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들을 삼켰다. 그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비난이었다. 죽음조차 동생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글렌의 잘못이 아니었다.

 

“37.2도면 정상 범위네. 하지만 아직 퇴원은 안 돼. 패드 빌려줄 테니까 동생한테 연락해둬라. 너 쓰러진지 이틀이나 지났으니까 많이 걱정하고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글렌은 씁쓸하게 웃으며 패드를 받아들었다. 위키드에 잡혀간 이후로 민호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글렌은 민호와 극적으로 재회한 뒤 단 한순간도 그 사실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민호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만큼이나 그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잃어버린 시간 따위는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글렌은 민호를 위험에서 떨어뜨려놓기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고립시킬 각오는 되어있었지만, 그것이 그가 바라는 바는 아니었다. 그는 좀 더 행복해지고 싶었다. 동생과 함께.

 

연결음이 이어지고 민호가 전화를 받자 애써 다잡은 의지가 무색하게 목소리가 메었다. 울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패드에 뜬 민호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티는 안냈지만 당황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걱정은 덜은 듯 했다.

 

“형 괜찮은 거야?”

“괜찮아. 열도 많이 내렸어. 근데 당장 퇴원은 안되고, 좀만 더 기다리래.”

“언제쯤 오는데? 내가 거기로 가면 안 돼?”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본즈가 끼어들었다.

 

“와라 와. 이참에 너도 같이 검진 좀 받아라. 술루한테 연락해서 데려다 달라고 해.”

 

행여나 글렌이 반대하고 나설까봐 민호는 알겠다는 대답을 끝으로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끊긴 패드를 내려다보며 글렌은 역시나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을 드러냈지만, 네 걱정하느라 네 동생은 바작바작 말라가고 있다는 본즈의 핀잔을 듣고 풀이 죽었다. 미열을 제외하곤 다른 증상도 없고, 체온도 정상으로 떨어졌으니 괜찮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임을 본즈가 몇 번이나 확인시키고서야 글렌은 마음을 놓았다. 더 정확히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단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글렌은 여차할 땐 반드시 자기의 머리를 쏴야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민호를 생각할 땐 항상 걱정과 불안뿐 이었다. 지구에서는 자신이 죽은 뒤 민호가 혼자 남게 될 것이, 요크타운에 온 이후론 겨우 잡은 평화로운 일상을 자신이 부수게 될 것이 두려웠다. 자신의 몸속에 그 끔찍한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한 글렌은 민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단념하지 못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애타게도 바랐던 일상이기 때문이다. 몇 년 만에 되찾은 동생, 따뜻한 보금자리와 식량, 쫓기는 일 없는 평화로운 나날들. 글렌에겐 함부로 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는 안식에 젖어 나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일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가시밭길을 맨 발로 달리며 실낱같은 희망을 뒤쫓고 있는 것이었다.

 

형제의 삶은 여전히 비극으로 젖어있다. 본즈는 그들에게 감히 위로를 건넬 수 없었다. 치료제 연구는 진전이 없다. 애초에 남은 데이터가 적었기 때문이다. 스팍을 비롯해 저명한 과학자와 의사들을 동원해 매달리고 있음에도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본즈는 민호의 무표정이 치료제에 대한 기대의 빛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 그를 마주하기가 껄끄러웠다. 확신은커녕 기약조차 할 수 없는 현황을 전달할 때마다 형제가 희망을 포기할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실망이 사람을 얼마나 절망 속에 몰아넣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본즈는 형제가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길 바랐다. 의사로서도, 그리고 레너드 맥코이라는 한 개인으로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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